스테인리스스틸에 밀려 요즘 일상 밥상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유기.
김 유기장은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쇠붙이나 놋쇠는 물론 집 안의 놋그릇까지 강탈하는 바람에 유기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고, 한국전 이후엔 놋쇠가 부족해 포탄 탄피나 잡동사니로 만들다 보니 품질이 떨어졌다"며 "해방 이후부터 6ㆍ25전쟁 직후까지 할아버지께서 유기를 당나귀에 싣고 인근 영주장에 내다팔던 기억도 있다"고 말했다.
김 유기장의 증조, 조부가 만든 유기는 주로 도부상들이 떼다 장터나 마을을 돌아다니며 파는 형식으로 유통됐다.